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생명의고향 미래의땅 금산


3월

역사의 현장을 거닐다 칠백의총

칠백의총은 임진왜란(1592) 때 왜군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700의 의승병들을 위한 무덤과 사당이지만 경내를 잘 꾸며 놓은 공원 같은 곳이다. 칠백의총의 정문을 들어서면 마주치는 아담한 연못하며 외삼문을 들어서면 비각과 기념관이 마주보는 넓은 공간에 정성들여 가꾼 잔디밭은 아늑함으로 분위기를 이끈다. 잔디밭 곳곳을 수놓고 있는 서너 그루의 향나무들은 세월을 느낄 만큼 관록을 뽐내고 있으니 그곳에 가면 유심히 살필 일이다. 칠백의 의승병이 일만 오천의 왜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그날의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외삼문과 내삼문사이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비각과 기념관. 비각 안에는 조헌선생이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싸움에서 순국하기까지의 사적을 기록한 ‘중봉 조선생 일군순위비’가 선생의 의병행적을 알리고 있다. 그런가하면 1976년 건립된 기념관은 칠백의사의 전투모습 등 행적을 그린 7폭의 기록화와 칠백의사를 추모하여 왕이 내린 제문을 비롯하여 칠백의사와 관련된 유물 107점이 진품으로 보관․전시되고 있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단 높은 곳에 정 중앙으로 자리 잡은 ‘종용사’를 마주하게 된다. 1647년 당시 호서․호남지방의 유림에 의해 건립되었고 1663년 현종이 ‘종용사’라는 사액을 내려 오늘에 이른다. 사당 뒤로는 1만 5천의 왜병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7백의승병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무덤은 조헌선생의 제자인 박정량, 전승업 등이 그들의 유해를 거두어 모신 무덤이다.

사적 제105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조선시대의 유적 칠백의총은 조선 선조 36년(1603)에 ‘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가 세워지고, 인조 25년(1647)에 종용사를 세워 700의사의 위패를 모셨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만행에 의해 의총은 허물어지고 순의비는 폭파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이후 해방을 맞이하고 일부 복원 되었다가 1963년 국가에서 묘역을 확장하고 1970년에 기념관·순의탑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의병장 중봉조헌(1544∼1592)과 의승장 영규대사(?~1592)는 청주성을 점령하고 청주 남방에 위치하고 있는 호서지방 점령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왜적을 협공하여 청주성을 탈환하는데 성공하지만, 이후 조헌선생의 의병과 영규대사를 포함한 의승병들은 조헌선생의 지휘 하에 금산전투에 임하고 왜군을 협공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조헌선생과 영규대사를 포함한 의병과 승병 모두가 전사하는 비운을 맞으면서 오늘의 칠백의총이 탄생했다.

칠백의총 정문. 정문에 위치하고 있는 관리소에는 칠백의총 탐방에 도움이 되는 팜플렛이 비치되어 있다.

칠백의총 정문. 정문에 위치하고 있는 관리소에는 칠백의총 탐방에 도움이 되는 팜플렛이 비치되어 있다.

칠백의총 정문 근경.

칠백의총 정문 근경.

정문을 지나면 칠백의총의 외삼문인 ‘의총문’에 이른다.

정문을 지나면 칠백의총의 외삼문인 ‘의총문’에 이른다.

칠백의총 외삼문 앞의 부채꼴 모양 반송이 눈길을 끈다.

칠백의총 외삼문 앞의 부채꼴 모양 반송이 눈길을 끈다.

칠백의총의 내삼문인 의총문. 삼문 출입은 들어갈 때 오른쪽 문으로 나올 때는 왼쪽 문을 이용하는 것이 법도다.

칠백의총의 내삼문인 의총문. 삼문 출입은 들어갈 때 오른쪽 문으로 나올 때는 왼쪽 문을 이용하는 것이 법도다.

칠백의총의 연못 풍경. 정문과 내삼문 사이, 칠백의총의 앞마당에 해당하는 공간에는 아담한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칠백의총의 연못 풍경. 정문과 내삼문 사이, 칠백의총의 앞마당에 해당하는 공간에는 아담한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칠백의총의 연못 풍경.

칠백의총의 연못 풍경.

칠백의총의 연못 풍경. 연못에서 노니는 비단잉어가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칠백의총의 연못 풍경. 연못에서 노니는 비단잉어가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비단잉어 노니는 연못 풍경.

비단잉어 노니는 연못 풍경.

칠백의총 연못 전경.

칠백의총 연못 전경.

칠백의총의 외삼문을 들어서면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오른쪽)와 기념관(왼쪽)이 자리하고 있다.

칠백의총의 외삼문을 들어서면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오른쪽)와 기념관(왼쪽)이 자리하고 있다.

순의비각 전경.

순의비각 전경.

비각 안의 비는 조헌선생이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싸움에서 순국하기까지의 사적을 기록한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위비’다.

비각 안의 비는 조헌선생이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싸움에서 순국하기까지의 사적을 기록한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위비’다.

기념관과 향나무. 거대한 향나무는 탐방객들의 기념촬영 배경으로 인기를 누린다.

기념관과 향나무. 거대한 향나무는 탐방객들의 기념촬영 배경으로 인기를 누린다.

기념관 전경. 1976년 건립되었다.

기념관 전경. 1976년 건립되었다.

기념관 안에는 칠백의사의 전투모습 등 행적을 그린 7폭의 기록화와 칠백의사를 추모하여 왕이 내린 제문을 비롯하여 칠백의사와 관련된 유물 107점이 진품으로 보관․전시되고 있다.

기념관 안에는 칠백의사의 전투모습 등 행적을 그린 7폭의 기록화와 칠백의사를 추모하여 왕이 내린 제문을 비롯하여 칠백의사와 관련된 유물 107점이 진품으로 보관․전시되고 있다.

기념관 안에는 칠백의사의 전투모습 등 행적을 그린 7폭의 기록화와 칠백의사를 추모하여 왕이 내린 제문을 비롯하여 칠백의사와 관련된 유물 107점이 진품으로 보관․전시되고 있다.

기념관 안에는 칠백의사의 전투모습 등 행적을 그린 7폭의 기록화와 칠백의사를 추모하여 왕이 내린 제문을 비롯하여 칠백의사와 관련된 유물 107점이 진품으로 보관․전시되고 있다.

기념관 안에는 칠백의사의 전투모습 등 행적을 그린 7폭의 기록화와 칠백의사를 추모하여 왕이 내린 제문을 비롯하여 칠백의사와 관련된 유물 107점이 진품으로 보관․전시되고 있다.

기념관 안에는 칠백의사의 전투모습 등 행적을 그린 7폭의 기록화와 칠백의사를 추모하여 왕이 내린 제문을 비롯하여 칠백의사와 관련된 유물 107점이 진품으로 보관․전시되고 있다.

금산전투의 현장을 재현해 놓은 디오라마.

금산전투의 현장을 재현해 놓은 디오라마.

금산혈전순절도. 조헌선생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칠백의사가 1592년 8월 18일 금산 연곤평에서 최후의 일인까지 적과 싸우다가 장렬히 순절하는 장면이다. 1592년 선조대왕이 충청도 의병장 조헌에게 ‘봉상시 첨정’의 벼슬을 내리고 왜병을 하루속히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해 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의 ‘선조대왕 교서(보물1007호)’가 전시되어 있다.

금산혈전순절도. 조헌선생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칠백의사가 1592년 8월 18일 금산 연곤평에서 최후의 일인까지 적과 싸우다가 장렬히 순절하는 장면이다. 1592년 선조대왕이 충청도 의병장 조헌에게 ‘봉상시 첨정’의 벼슬을 내리고 왜병을 하루속히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해 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의 ‘선조대왕 교서(보물1007호)’가 전시되어 있다.

칠백의총의 내삼문 전경.

칠백의총의 내삼문 전경.

칠백의총의 내삼문인 취의문. 안으로 들어서면 사당과 요역으로 연결된다.

칠백의총의 내삼문인 취의문. 안으로 들어서면 사당과 요역으로 연결된다.

칠백의총의 위폐가 모셔져있는 종용사 전경.

칠백의총의 위폐가 모셔져있는 종용사 전경.

탐방객들이 참배를 할 수 있도록 화환과 향로가 마련되어 있다.

탐방객들이 참배를 할 수 있도록 화환과 향로가 마련되어 있다.

종용사 뒤로 묘역이 조성되어있다.

종용사 뒤로 묘역이 조성되어있다.

동선을 따라 종용사 뒤로 가면 묘역으로 오르게 된다.

동선을 따라 종용사 뒤로 가면 묘역으로 오르게 된다.

칠백의총 전경. 묘 옆에는 1603년 4월에 해평부원군 윤근수가 비문을 짓고 김현성이 쓴 원비 ‘중봉조선생일군순위비’모형비가 세워져 있다. 그 옆에는 1971년 문화공보부가 비문을 번역하고 요약해 놓은 ‘중봉조선생일군순의비 요약’ 동판이 당시의 전투상황과 이후 후손들이 그들의 충절을 기리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비의 원본은 외삼문 영역에 있다.

칠백의총 전경. 묘 옆에는 1603년 4월에 해평부원군 윤근수가 비문을 짓고 김현성이 쓴 원비 ‘중봉조선생일군순위비’모형비가 세워져 있다. 그 옆에는 1971년 문화공보부가 비문을 번역하고 요약해 놓은 ‘중봉조선생일군순의비 요약’ 동판이 당시의 전투상황과 이후 후손들이 그들의 충절을 기리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비의 원본은 외삼문 영역에 있다.

칠백의총.

칠백의총.

칠백의총을 탐방하고 있는 가족단위의 탐방객.

칠백의총을 탐방하고 있는 가족단위의 탐방객.

칠백의총 전경.

칠백의총 전경.

칠백의총과 마주보는 자리에 세워진 칠백의사 순위탑 가는 길.

칠백의총과 마주보는 자리에 세워진 칠백의사 순위탑 가는 길.

칠백의사 순위탑 근경.

칠백의사 순위탑 근경.

칠백의사 순위탑 전경.

칠백의사 순위탑 전경.

칠백의사 순위탑 주변에는 휴게공간과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다.

칠백의사 순위탑 주변에는 휴게공간과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다.

문화재 정보

  • 종목 : 사적 제105호 / 명칭: 칠백의총(七百義塚) / 분류: 유적건조물, 인물사건, 인물기념, 순절지 / 수량-면적: 135,693㎡ / 지정(등록)일 1963.01.21

이용안내

  • 안내 : 관람시간은 하절기 09:00~18:00 이고 동절기는 09:00~17:00. 매주 월요일 정기휴관하며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관, 관람료는 무료. 안내 및 문의전화는 금산군 문화공보관광과 041-750-2384.

찾아가는 길

  • 내비게이션 명칭검색 : 칠백의총
  • 주소검색 : 충남 금산군 금성면 의총길 40
  • 가는 길 안내 : 대전통영고속도로 금산IC에서 금산방면으로 우회전하여 계속직진, 금산IC 기준 3.3km 전방 중도오거리에서 다시 우회전. 1.5km 전방 양전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1.4km 전방에 의총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회전하면 0.8km 전방이 목적지다.

칠백의총과 함께하는 여행지금산위성통신지구국

칠백의총 앞 넓은 들은 칠백 의승병이 일만 오천의 왜군과 맞서 싸운 곳, 연곤평이다. 격전의 현장이었던 연곤평에는 금산위성통신지구국이 자리 잡고 있다. 1970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금산위성통신지구국은 등록문화재 제436호로 현재 지정되어 우리나라 통신역사 발전의 한 장을 증언하고 있다.

미국, 홍콩, 대만 등 태평양 연안 7개 국가 간 136회선의 국제통신망을 구축하여 우리나라 국제통신 발달의 선구적 역할을 한 것. 지금의 ‘통신강국 코리아’를 있게 한 근간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진악산은 우리나라 최초로 인삼이 발견되고 재배를 시작한 전설의 고향을 품고 있는 산으로 개삼터가 산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영산이기도 하다.

금산위성통신지구국과 진악산이 어우러진 이 풍경은 1592년 임진년(壬辰-)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아픈 역사를 끌어안고 있다. 위성통신지구국이 위치하고 있는 들, 연공평은 의병장 조헌선생과 승병장 영규대사가 이끄는 700 의·승병이 수적 열세였지만 1만 5천의 왜군과 싸우다가 적에게 큰 타격을 입히고 700 의·승병 모두 장렬히 전사한 역사의 현장이다. 그 들녘이 바라다 보이는 십리장동 첫머리, 칠백의총이 조성된 데는 이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금산위성통시지구국 전경. 지구국 뒤로 보이는 먼 산이 금산의 진산 진악산이다.

금산위성통시지구국 전경. 지구국 뒤로 보이는 먼 산이 금산의 진산 진악산이다.

금산위성통시지구국 근경.

금산위성통시지구국 근경.

금산위성통시지구국 근경.

금산위성통시지구국 근경.

금산위성통시지구국 근경.

금산위성통시지구국 근경.

금산위성통시지구국 근경.

금산위성통시지구국 근경.

  • 담당부서 :
  • 연락처 :
  • 최종수정일 : 2016-06-27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