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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고향 미래의땅 금산


육백고지 전승기념탑

육백고지전승기념탑 사진

육백고지전승기념탑천혜의 요새 600고지, 그곳에 남은 6.25 동족상잔의 상흔

충남 금산군 남이면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고도 650m의 백암산은 첩첩산중, 산중의 산으로 산악지형이 발달한 금산의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산의 동남쪽 역평리와 북서쪽 건천리는 한국전쟁에서 패배한 후 퇴로가 막힌 빨치산과 그 동조자들에 의해 백암산을 중심으로 마을 일대가 요새화됐던 땅이다.

특히 건천리는 지금도 북쪽으로 해발 350m의 오항고개를 넘거나 남동쪽으로 해발 360m의 배티재를 넘어야 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천혜의 요새. 마을의 남쪽은 백암산과 선야봉이 연봉을 이루며 막아서고 그 나머지는 백암산 줄기가 마을의 동쪽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선야봉 줄기가 마을의 서쪽을 둘러친 가운데 북쪽은 금남정맥이 흐르며 마을을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오항고개, 배티재. 두 고개를 넘지 않고는 험준한 산을 넘어야 비로소 건천리에 닿을 수 있기 때문에 퇴로가 막혀 궁지에 몰린 빨치산과 그 동조자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곳은 없었을 터. 천혜의 요새와 같은 자연지형 덕에 백암산을 중심으로 건천리를 장악한 빨치산과 그 동조자들이 민간인과 경찰, 군인 합동토벌대의 공격을 피해 5년을 버틸 수 있었다.

1951년 5월, 마침내 우리 군은 민·경·군 300여명의 병력을 투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백암산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빨치산과 그 동조자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시작한다. 해발 650m의 백암산을 중심으로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는 시작됐고 이듬해 6월까지 1년여의 지리한 싸움 끝에 양쪽 모두 많은 사상자를 내고 전투는 막을 내렸다. 이 전투가 바로 금산에서 벌어진 공비토벌 작전으로 민ㆍ경ㆍ군 호국용사들이 피 흘리며 격전을 벌인 육백고지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양쪽을 합쳐 모두 2,563명이 목숨을 잃어 씻을 수 없는 동족상잔의 상흔이 남고 말았다. 빨치산 2,287명이 사살되고, 1,025명이 생포되었으며, 경찰 184명·군인 20명·민간인 72명 등이 희생된 것.

1991년 3월 25일, 금산군은 배티재 고갯마루 언덕에 '육백고지전승탑'을 세우고 전승탑 앞으로 충혼비와 육백고지참전공적비를 나란히 세웠다. 육백고지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민ㆍ경ㆍ군에 대한 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이 전투에 참여하여 고귀한 승리의 위업을 세운 군민의 향토방위 정신고취와 반공정신의 산 교육장으로 삼고자하는 것이 전승탑·충혼비 건립의 또 다른 취지다.

찾아가는 길

  • 내비게이션 명칭검색 : 육백고지전승탑, 충남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 산 16-2
  • 자가용 이용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안영나들목을 통과하여 금산군 복수면소재지를 지나 진산면 방축삼거리에서 좌회전 후 부암삼거리에서 남이자연휴양림 방면으로 우회전하 108km 전방 지암슈퍼삼거리에서 10시 방향으로 길을 잡아 5.1km 진행하면 배티재 고갯마루에 닿는다. 고갯마루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이용문의

금산군청 문화공보과 041-750-2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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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요새 600고지, 그곳에 남은 6.25 동족상잔의 상흔 육백고지전승기념탑

난공불락의 요새 느티골

해발고도 650m의 백암산. 그리고 해발고도 758m의 선야봉. 연봉을 이루는 이 두 산의 줄기가 서로 마주보며 자락을 급히 내린 곳은 깊은 골짜기를 이룬다. 이 골짜기의 이름은 '느티골.'골짜기 주변에 느티나무가 많아서 지어진 이름이다. 동․서․남쪽은 높은 산줄기가 감싸고 북쪽으로 좁은 골짜기가 돌아나간 이 협곡은 난공불락 천혜의 요새로 1951년 토벌작전 당시 백암산 일대를 장악한 빨치산 본부가 있던 곳이다.

느티골

선야산 신선봉에서 바라본 느티골. 건머편 백암산줄기와 선야산줄기가 자락을 내려 깊은 협곡을 형성하고 있다.

느티골

느티골 계곡이 건천리를 향해 감입곡류하면서 흘러나가 외부에서 느티골 내부를 살펴볼 수 없는 난공불락의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천혜의 요새 건천리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는 산악지형이 발달한 금산의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한국전쟁에서 패배한 후 퇴로가 막힌 빨치산과 그 동조자들이 숨어 지내며 저항하던 마을로, 지금도 북쪽으로 해발 350m의 오항고개를 넘거나 남동쪽으로 해발 360m의 배티재를 넘어야 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천혜의 요새다.

오항고개, 배티재. 두 고개를 넘지 않고는 험준한 산을 넘어야 비로소 건천리에 닿을 수 있기 때문에 퇴로가 막혀 궁지에 몰린 빨치산과 그 동조자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곳은 없었을 것이지만, 국군에게는 천혜의 요새에 숨어든 빨치산을 소탕하기까지 많은 애를 먹었다. 지형 덕에 백암산을 중심으로 건천리를 장악한 빨치산과 그 동조자들이 민간인과 경찰, 군인 합동토벌대의 공격을 피해 5년을 버틸 수 있었다.

건천리

선야봉에서 바라본 건천리 원경. 오른쪽 산줄기가 백암산 줄기이자 금남정맥 도상의 산줄기이고, 왼쪽 산줄기가 선야봉 줄기아다. 선야봉줄기는 오항고개에서 백암산줄기와 함류하여 금남정맥을 이어간다.

건천리

육백고지 전승탑 뒤 백령성에서 바라본 배티재 아래 건천리. 마을이 한눈에 봐도 첩첩산골임을 알 수 있다.

건천리

오항고개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오항리 춘경동마을. 선야봉줄기와 백암산줄기가 합류하는 고갯마루 아래 위치한 산골마을이다. 이 마을은 건천리의 이웃마을로 소탕작전 당시 빨치산이 장악하고 있던 마을이다.

건천리

역평마을에서 건천리로 넘어가는 배티재

건천리

배티재 고갯마루. 고갯마루 언덕에 육백고지전승탑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건천리

배티재에서 건천리로 넘어가는 고갯길 아래 마을. 빨치산 소탕을 위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요새였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건천리

오항리 고갯마루 정자 옆으로 등산로 익구가 보인다. 이곳은 금남정맥을 찾는 산군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고객마루이다.

건천리

호앙고개를 넘으면 건천리로 가는 고갯길이 구절양장 이어진다.

전승탑의 의미

난공불락의 요새인 산을 상징하는 양쪽 구조물을 웅장하게 세우고 중앙에 영원히 펄럭이는 승리의 깃발을 당당하게 배치하여 두 산과 한 개의 깃발 탑신은 하나로 커다란 조화를 이루어 민ㆍ경ㆍ군이 삼위일체가 되어 역사적 위업을 이루었다는 뜻을 전체적 조형물로 표현하였으며 세 개의 탑신을 통한 통일감과 중앙탑신의 세 차례 굴곡은 변화와 고도의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다.

전승탑의의미

건천리에서 바라본 배티재. 고갯마루 언덕위로 육백고지전승탑이 보인다.

전승탑의의미

배티재 고갯마루 고갯마루에는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어 답사객의 주차편의를 돕고 있다.

전승탑의의미

주차장과 연결되어 있는 육백고지전승탑 계단.

전승탑의의미

전승탑 계단을 오르면 육백고지전승탑 전경과 마주하게 된다.

전승탑의의미

육백고지전승탑을 세우고 전승탑 앞으로 충혼비와 육백고지참전공적비를 나란히 세웠다.

전승탑의의미

육백고지참전전승비

전승탑의의미

충혼비

전승탑의의미

충혼비와 육백고지참전전승비

전승탑의의미

육백고지전승탑 정면

전승탑의의미

육백고지전승탑 측면

전승탑의의미

전승탑에 조성된 민․경․군 상

전승탑의의미

전승탑에 조성된 민․경․군 상이 배티재 고갯마루를 향하여 서있다.

전승탑의의미

느티골 동쪽으로 뻗어있는 백암산 줄기와 민․경․군 상

전승탑의의미

육백고지전승탑 후면

전승탑의의미

육백고지전승탑의 참배객

  • 담당부서 : 주민복지지원실 복지기획팀
  • 연락처 : 041-750-2471
  • 최종수정일 : 201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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