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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대첩지

관광지사진

이치대첩지조선의 곡창 호남을 지킨 3대 대첩의 하나 이치대첩의 현장

임진왜란 3대 대첩. 이 3대 대첩은 1592년 7월 8일 이순신이 이끈 한산대첩과 1592년 10월 5일부터 6일간의 격전 끝에 김시민의 군대가 왜적을 물리친 진주대첩

1만 관군·의병으로 3만 왜적을 1593년 2월 12일부터 수일간의 격전 끝에 승리의 깃발을 올린 권율장군이 이끈 행주대첩 등, 왜란 발발 후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왜적을 대파시키고 승전의 깃발을 올린 3대 큰 싸움을 일컫는 말이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한산대첩과 진주대첩은 호남을 장악하고자 했던 왜적의 침략에 맞서 싸워 조선의 곡창을 지켜냈던 큰 싸움으로도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호남의 곡창을 지킨 3대 대첩의 하나로 꼽을 수 있는 사건으로 이치대첩이 더해진다. 특히 왜적들이 부산성 함락을 시작으로 파죽지세로 승전을 거듭하며 개전 한 달도 안돼서 서울마저 합락 시키고 평양으로 질주하는 와중의 대첩은 왜적의 사기를 꺽어 놓기에 충분했다. 한산대첩과 이치대첩이 그 사건. 남해를 굳건히 지켜냈던 해전인 한산대첩이 있던 날 금산에서 벌어진 이치대첩은 군량미의 현지보급을 꾀하고자 했던 왜적이 조선의 곡창 호남을 공략하고자 전주로 진군하는 것을 막아선 사건으로 1,500의 관군·의병만으로 2만의 왜적을 격퇴시킨 사건이다.

임진년 7월 8일 적장 고바야카와 다카가케는 2만 병력을 이끌고 배티재를 넘으려 했다.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왜적이 기세등등하여 호남평야로 진출을 시도했던 것. 군량미 현지보급처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왜적들의 동태를 미리부터 파악하고 있던 권율장군은 동복현감 황진과 1,500여명의 관군·의병을 데리고 그들이 넘고자 하는 고개에서 목책을 세우고 화살과 돌 등 무기를 확보하며 진을 치고 기다렸다.

마침내 벌어진 싸움. 7월 8일 아침의 배티재는 피로 물들고 있었다. 협곡을 이루는 험한 지형지세를 이용한 권율장군의 전술전략은 적중했지만 중과부적의 힘겨운 싸움이 되리라 예상했던 만큼 전투는 치열했다. 이른 아침부터 해 질 무렵까지 전투는 계속 되었던 것. 1,500 전 병력을 독려하며 결사전을 벌인 끝에 적을 물리치고 대첩을 올리니 이 전투가 조선의 곡창을 지킨 이치대첩이다.

1592년 7월, 승전의 함성이 울렸던 배티재. 고개의 이름 유래는 고개 일대에 배나무가 많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을 한자로 하여 ‘배나무 이’, ‘고개 치’를 써서 이치(梨峙).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대첩을 이루었으니 ‘이치대첩지’가 된다.

찾아오시는 길

  • 내비게이션 명칭검색 : 금산이치대첩지
  • 주소검색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대둔산로 191 일원
  • 가는 길 안내

    경부고속도로 대전남부순화고속도로 안영IC 통과 후 고가도로 아래 사거리에서 좌회전후 복수방면으로 계속 직진, 8.3km 전방 선무교차로에서 좌회전 후 다리 건너 다음 사거리에서 우회전. 완주방면으로 직진 11.6km 전방 길 우측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대전통영고속도로 추부IC통과 후 금산방면으로 길을 잡아 좌회전, 마전교차로에서 우측길로 진입. 양청사거리에서 11시 방향 좌측길 이용 마전사거리까지 이동 후 좌회전하면 17번국도를 타게 된다. 이곳에서 목적지는 13km 전방, 17번국도를 벗어나지 말고 계속 이동하면 목적지다.

문화재정보

  • 종목 : 충청남도 기념물 제154호
  • 명칭 : 금산이치대첩지 (錦山梨峙大捷址)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임란전적지
  • 수량·면적 : 2필지 99,488㎡
  • 지정(등록)일 : 2000.09.20.
  • 종목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5호
  • 명칭 : 권율장군이치대첩비(權慄奬軍梨峙大捷碑)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 수량·면적 : 1기
  • 지정(등록)일 : 1984.05.17

이용문의

금산군청 문화공보과 041-750-2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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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곡창 호남을 지킨 3대 대첩의 하나 이치대첩의 현장 이치대첩지

이치대첩지의 상징 호두나무 고목, 그리고 옛길

이치대첩의 현장 배티재는 해발고도 663m의 오대산. 그리고 오대산 동쪽 해발고도 510m의 산봉우리가 마주보며 자락을 내려 협곡을 이루는 곳을 지나는 고갯길이다. 배나무가 많아 배티재라 했던 이 고개의 이름을 증명이라도 하듯 길가의 배나무 고목 한그루가 고갯길을 지키고 있다.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이 나무를 바라보자니 안도현의 시 ‘산이나 들판으로 소풍을 가면’의 싯구가 떠오른다.

“중략” / 지나가는 길에 / 오래묵어 나이 많이 잡수신 느티나무를 만나거든 / 무조건 그 나무를 향해 경배할 일이다. / 더불어 그 나무의 마을을 향해서도 경배할 일이다./ 나이 많이 잡수신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은 / 충분히 경배받을 자격이 있다.“중략”

시 속의 그 나무는 아니나 다가가 살펴보니 ‘오래묵어 나이 많이 잡수신 산돌배나무’였다. 나무의 이름과 함께 나이까지 표석은 알려주고 있다. 1986년 10월에 금산군에서 보호수로 지정·보호하고 있다는 400년 수령, 나이 많이 잡수신 나무이다. 1986년에 보호수 지정 당시 제작된 표석에 수령 400년이라 적어놓았으니 2013년 현재의 나이로 427살, 이치대첩이 있은 날로부터 현재까지는 421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다.

나무는 그날의 사건을, 함성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치대첩 당시 열 살도 안 되었을 가녀린 어린나무는 수백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고갯길을 지키며 한해, 두해 나이테를 더해왔을 것이다. 좁다란 고갯길 대신 오대산 동쪽자락을 휘감아 도는 17번국도가 고갯길을 대신하고 있는 지금은 옛길의 지형지세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변모해있다. 그러나 배티재에 가거든 나이 많이 잡수신 산돌배나무와 고갯길에 경배드릴 일이다.

이치대첩지의상징

진산삼거리에서 전주방면으로 1.2km 이동하면 11시방향 왼쪽 길(대둔산 그린리조트 입구)이 배티재 옛길이다.

이치대첩지의상징

배티재 옛길로 들어서서 300m 가량 되는 지점, 길 왼쪽에 산배나무 고목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치대첩지의상징

산배나무 고목의 밑둥 옆에 세워놓은 표석. 품격, 고유번호, 수종, 지정일자, 수령, 소재지, 관리자 등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이치대첩지의상징

느티나무나 은행나무처럼 몸집이 풍성하지 않고 비교적 앙상해 보이는 산배나무 고목. 가지가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뻗어나간 고목의 모습이 특이하다.

이치대첩지의상징

고목이 있는 자리를 뒤로하고 고갯길을 계속가면 ‘대둔산숲속리조트’에 다다른다. 길은 이곳에서 끝이 난다.

진산면민의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하리 그날의 함성

‘이치대첩지무궁화동산’은 이치대첩의 현장 배티재가 바라다 보이는 오대산 동쪽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기념공원이다. 이 공원이 조성된 묵산1리 마을 이름의 유래는 낮에도 컴컴할 정도로 숲이 우거진 마을이라 하여 ‘먹미’라 부른데서 연유한다. 마을 이름의 유래가 그러하듯 대첩이 일어났던 당시의 고갯길 주변은 어떠했을까.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이치대첩지무궁화동산으로 오르기 전 주차장 남쪽, 길가에 세워져 있는 ‘밀양박공휘관옥공적비’를 살펴볼 일이다. 이치대첩 사건의 대강을 알 수 있는 비문을 살펴보면 이치대첩에 대한 이 지역사람들의 자긍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다. 마을의 버스정류장 겸 등나무쉼터가 있는 자리에 이치대첩지무궁화동산 표석과 함께 나란히 서있는 공적비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역사에 왜적과 맞서 싸운 전투 중
이치대첩보다 더 큰 전투가 어데 또 있을까
승전의 함성이 메아리쳐 들려오는 듯합니다.
1592년 곡창 호남의 관문인 이치고개를 넘고자
수많은 왜적이 성난 노도처럼 밀려오는
그 광경을 한번 상상해 보시라.
정말 아찔한 순간
우리들 가슴에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산교육의 장 이치대접지
바로 이 곳 이니라

밀양박공휘관옥공적비. 진산면 이장협의회를 비롯 진산향교, 진산면체육회, 진산면지역발전협의회 등 진산면을 이끌어가는 11개 지역단체가 중심으로 공적비 건립 추진위를 구성하여 세운 이 비는 비문의 주인공인 고 박관옥 옹의 행적과 애향심, 이치대첩을 영원히 기리기 위한 생전의 노력 등을 기록해놓았다. 구구절절이 애향심과 이치대첩에 대한 자긍심 묻어나는 비문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으로 본문을 가름한다.

『오늘 이 비문을 제수 받으시는 고 박관옥 옹께서는 진산면 묵산리 태봉골에서 1923년 12월 16일에 출생하시여 애향의 참된 정신을 몸소 실천하신 분으로 6.25의 참변을 겪는 동안에도 우리 고장 수호에 선봉 하시어 주민들의 찬사를 받아 오셨으며 육전의 삼대 대첩 중 최초 승전지인 이치 입구에 권율장군의 승전 비문이 세워졌으나 일제의 만행으로 파손되어 잡초지에 방치되어 있을 때 그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고 바라본 이가 없었으나 충효가전의 가훈을 중시하시는 고 박관옥 옹께서는 1963년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을 이치대첩 주변 관리는 물론 화수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매년 조촐한 추념제를 올리는 등 군량미 조달의 보급 통로인 호남의 관문 진입을 저지하기 위한 이치전투의 승전을 길이 보전하심에 여생을 다하신 고 박관옥 옹의 고귀하신 모습을 영원이 간직하고자 면민의 뜻을 한데 모아 이 비문을 제수 합니다. 서기 2009년 기축 8월 26일 진산면주민일동』

전산면민

금산 진산의 산골마을 묵산1리(원묵산) 전경. 이 마을은 오대산 동쪽 자락에 둥지를 틀고 대대손손 마을사람들이 살아 온 산골마을이다. 낮에도 컴컴할 정도로 숲이 우거진 마을이라 하여 ‘먹미’라 부르다가 변하여 묵미가 되고, 현재의 지명 묵산이 되었다 한다.

전산면민

묵산1리 버스정류장. 이치전적지무궁화동산 표석과 밀양박공휘관옥공적비가 나란히 서있는 등나무쉼터가 승차대기장 역할을 한다.

전산면민

묵산1리 버스장류장 표지판 옆으로 공적비와 이치대첩지무궁화동산 표석이 나란히 서있다.

전산면민

등나무쉼터 앞을 지나는 17번국도는 배티재 옛길을 대신해 충남과 전북 두 고장을 잇고 있다.

전산면민

밀양박공휘관옥공적비. 한글로 비문을 써놓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다.

이치대첩지 무궁화동산의 이치대첩비 그리고 충장사

이치대첩지는 행주대첩, 진주대첩보다 앞서는 임진왜란 최초의 육전승전지로 국가사적지로 지정할 것을 추진 중인 사적 예정지이다. 그에 앞서 도기념물 154호로 지정하고 성역화 사업 또한 추진 중인 이곳의 이치대첩지무궁화동산은 비각공간과 제향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동산의 비각공간은 외삼문을 들어서면 다다를 수 있다.

이치대첩비를 풍파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비각에는 충남 문화재자료 제25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는 권율장군이치대첩비 (權慄奬軍梨峙大捷碑)가 세워져 있다. 이 비는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승리로 이끈 이치대첩을 기념하고 있는 비로 고종 3년(1866) 도원수 권공이 비와 함께 사당을 세웠으나, 1944년 일제에 의해 폭파되어, 1963년 이 대첩에 참여한 사람들의 후손과 지역 유지들이 지금 장소에 다시 건립한 것이다.

비각을 뒤로하고 내삼문을 들어서면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발길은 이어진다. 본래 대첩비와 함께 대첩사(大捷祠)를 지어 장군의 사당으로 삼았으나 일제의 만행으로 비와함께 사당도 사라져, 비와 함께 지은 이 사당의 명칭 또한 ‘충장사’라 이름을 새로 지었다. 충장사는 이치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 장군의 전공을 기리고 그의 호국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이치대첩비

주차장에서 이치대첩무궁화동산을 가자면 지나치게 되는 이치대첩지 안내판. 안내판 오른쪽 길은 계단으로 이어지면서 외삼문에 이른다.

이치대첩비

이치대첩지무궁화동산의 이치대첩문.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삼문이다.

이치대첩비

이치대첩문 정면. 삼문을 출입할 때 본래 우측 협문으로 들어가 좌측 협문으로 나오는 것이 법도이나 평상시 관리 편의상 오른쪽 문을 사용한다. 유적은 상시 탐방이 가능하도록 일몰시만 제외하고 항상 개방되어 있다.

이치대첩비

삼문을 들어서면 비각이 눈길을 잡는다.

이치대첩비

비각에는 ‘대첩비각’이라 쓴 현판이 달려있다. 돌로 제작된 비석이 비바람에 의해 풍화되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비를 세운 자리에 비각을 세워 비를 보호한다.

이치대첩비

대첩비각의 정면

이치대첩비

대첩비각 안에는 ‘원수권공이치대첩비(元帥權公梨峙大捷碑)라 쓴 흔적이 역력한 대첩비의 일부분이 남아 우리 민족혼을 말살하려 했던 일제의 만행을 오늘에 전하고 있다.

이치대첩비

이치전적지무궁화동산의 내삼문. 내삼문을 들어서면 충장사로 동선은 이어진다.

이치대첩비

충장사 외삼문의 협문사이로 사당의 편액이 엿보인다.

이치대첩비

삼문의 협문에서 바라본 충장사

이치대첩비

앞면 3칸 옆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집의 충장사.앞면 1칸은 퇴칸이다. 원기둥이고 기둥머리에 공포를 짜 올린 익공식 구조이다.

이치대첩비

충장사 정면

이치대첩비

참배객을 위하여 향과 향로가 준비되어 있다.

이치대첩비

사당 안에는 이치대첩 상상도가 장군의 영정 양 옆 벽면에 그려져 있다.

이치대첩비

권율장군 영정. 임진왜란을 겪는 동안 왜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던 조선 중기의 명장으로 행주대첩을 이끈 명장으로 이름이 높다.

  • 담당부서 : 문화공보관광과 문화예술팀
  • 연락처 : 041-750-2381
  • 최종수정일 : 2018-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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